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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사직단 스터디 및 해설 준비과정/2018년 사직단 해설준비 과정/2018년 3월 사직단 해설 준비/선생님들 자료/raw
(Office document text) ☞ 사직 대문을 등지고 서서.. 안녕하세요. 이 시간 해설을 맡은 우리문화숨결 시민단체 소속인 궁궐 길라잡이 정수경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 여러분.. 지금 사직단(사적 제121호)에 오셨는데요… 혹시 이곳 사직단이 뭐 하는 곳인지 알고 계신가요??? 혹시 TV 사극에서 “종묘 사직”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죠? 왕이 ‘종묘사직이 위태롭구나’ 라고 하거나 신하가 왕에게 ‘종묘 사직을 버리시렵니까?”하는 말을 종종 들어보셨을 건데요~. 여기에서 나오는 종묘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종로 3가에 위치한 종묘인데요.. 종묘는 조선시대 왕과 왕비 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입니다. 그럼 우리가 있는 이곳 사직은 어떤 곳일까요? 사직은 토지신인 사(모일-사, 토지신-사社)와 곡물신인 직(피-직, 곡식-직稷)을 상징하며, 이 사직에게 제사를 지내는 단을 사직단 이라고 합니다. 예로부터 나라를 세우면 먼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이와 함께 땅과 곡식의 신에게 백성이 편안하게 살수 있도록 풍요를 기원하는 사직제를 올렸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사직에 대한 제사를 지낸 기원은 삼국시대부터였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사직단은 조선왕조가 수립된 후 태조때(3년/1394년 11월) 공사를 시작하여 태종 때(7년/1407년 5월) 세워진 곳으로 봄/가을/납일에 제사를 지냈고 천재지변이[가뭄,폭우 등] 일어 날 때마다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2000년 10월에 사직대제가 국가 무형문화제 제111호로 지정된 이후 매년 9월 넷째주 토요일날 사직대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이곳은 일제 시대와 근현대 시대를 거치면서 공간의 모습과 기능이 많이 변형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데요.. 이 그림은 1783년(정조 7년)에 편찬된 ‘사직서 의궤’에 나오는 ‘사직서 전도’라는 것인데 사직서의 모습을 그려둔 것입니다. 이중에.. 현재 남아있는곳은… 제가 색으로 칠해둔.. 이곳만 남아 있습니다. [사진파일] 많이 남아있지 않죠..?? 그래서 현재 문화재청에서 복원중에 있고 발굴조사도 계속 진행중에 있습니다. 사직단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지 않기때문에 설명 중 파일자료를 보여드려 좀더 쉽게 이해 하실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사직단은 앞서 말씀드린대로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과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사진파일] 여기 그림에서 보시면 안향청 일대.. 이곳이 현재 사직단 관리사무실이 있는 곳인데요. 이곳은 제례때 사용되는 중요 물품인 향과 축을 보관하고… 왕이 친히 제사를 지내러 오면 이곳에 머물면서 왕이 준비를 하던 곳이구요.. 밑에 부장직소는 사직의 수문을 담당한 부장들이 숙직하는 곳이였고 악공청은 악공들/일무원들의 준비공간.. 그리고 사진 그림 이쪽으로 보시면 재생정 우물 전사청 이런곳 나와있는 이 구역은 제수음식을 마련하던곳입니다. 그리고 가운데 네모안.. 사단/직단 나와있는 이곳이 제사를 지내는 공간입니다. 저는 지금 사직대문을 설명 드리고 안에 제사지내는 공간으로 들어가서 설명을 이어 나가겠습니다. 자 먼저 사직단 정문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77호로 지정] 이 대문은 태조3년(1394년) 처음 지어졌는데요~ 이후 전란으로 소실되었다가 임진왜란 이후 다시 세웠습니다.. [♣ 설명안함 – 숙지사항 – 정문 관련 : 앞면 3칸, 옆면 2칸, 맞배지붕, 평삼문]. 원래부터 이 문이 이 자리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좀더 앞쪽에 위치해 있었는데요… 1962년에 사직로 확장과 사직터널 연결을 위해 14M 후방으로 이동 되었습니다. 이때 현판을 새로 달고 문도 새로 교체하였습니다. 이후 1973년..인도 확보 위해 10M 더 도로 안쪽으로 이동 되어 현재의 자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그림 보시면 현재랑은 다른 모습인 것을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사진파일] 지금은 문이 전부 막힌 판문 형태로 되어 있지만, 일제시기에 남겨진 [조선고적도보]라는 책에 남겨진 사진에 의하면 옛 사직단의 정문은 두터운 판문 위에는 홍살을 설치하여 이곳이 국가 제사를 올리는 신성한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여러분들이 들어오실 때 오른쪽에 위치해있는 현재 사직단 관리 사무소/화장실 자리 그리고 놀이터 있는 자리 이쪽이 예전 안향청과 그외 부속건물이 있던 자리 입니다. [사진파일] 이 안향청은 이 사직단 영역에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건물입니다. 우리 제사를 지낼 때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물품이 뭐가 있을까요?? 우리 가정제사 지낼 때 생각해보시면 향을 피우고.. 누구한테 제사를 지내는지 지방 쓰고 하시죠??? 여기 대제때에도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안향청은 향축을 보관하는 장소이며 임금의 친제시에 왕이 머무는 어재실로 사용되던 곳입니다. 현재는 복원관계로 들어가지 못하는데요.. 안향청의 모습은 다음 사진과 같습니다. [사진파일] >>>>>>>>>>>>>>>>>>>>>>>>>>>> 원장 안으로 이동 지금 여러분들이 들어오신 공간은 사직대제시 제사를 지내는 공간입니다. 보시면 사방이 담으로 둘러쳐져 있는데요… 이 담을 원장 이라고 부릅니다. 원장의 동서남북 사방에는 각각 홍살문이 설치되어있는데요… 네개의 홍살문 중 동/서/남쪽의 문은 한 칸, 북문은 세 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북문은 신문이라고도 부르는데요.. 사직의 신이 북문을 통해 들어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북문을 세 칸으로 조성한 것은 신이 출입하는 문으로서 다른 문들보다 격이 높다는 점을 보이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1712년 숙종 38년 2월 – 큰 바람이 불어 사직의 북쪽신문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해서 다시 복구했다는 실록의 기록이 있습니다. 저 위에 네모나게 판이 하나 보이실텐데요.. 판위.. 라고 부릅니다. 판위는 제사 때 술을 올리는데 첫술잔을 올리는 사람인 초헌관 / 친제시에 왕이 서는 자리입니다. 사직서의궤의 단유도설에는 원장의 서문과 판위를 잇는 동선이 표시되어 있는데요 이것은 사직제사 때 국왕이 원장의 서문으로 들어와 판위에 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에 네모지게 낮은 담이 쳐져 있는 것이 보이실텐데요.. 이 담은 유.. 라고 부릅니다. 이 유 안에서 실제적인 제례가 이루어 지고.. 유와 원장 사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공간에서는 제례 때 왕이 있고.. 제관들이 도열해 있으며 일무원들이 춤을 추고 악공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곳입니다. [사진파일]/[판위 위치 복원 설명] >>>>>>>>>>>>>>>>>>>>>>>>>>>> 유 안으로 이동 [유 한변의 길이 : 45.9미터] 사직단의 제단은 사각형인 두 개의 제단으로 이루어져있는데요.. [사진파일] 이것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 라는 옛사람들이 우주를 바라보았던 세계관인 천원지방 사상 중.. 이곳이 땅을 관장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므로 방형 즉 사각형의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생각해 보시면 조선호텔쪽 환구단(1897/광무1년, 사적 157호)…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 있이 있죠?? 이곳은 둥근 모양으로 되어있습니다. [환구단 :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제단. 사적 제157호. 원구단은 천자가 하늘에 제를 드리는 둥근 단으로 된 제천단이다. 1913년 일제에 의하여 원구단이 헐리고 그 터는 지금 조선호텔이 되었는데,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팔각정의 황궁우는 지금도 남아 있다.] 두 개의 제단 중 동쪽에 위치한 것이 토지의 신을 모신 곳이 사단이고 서쪽에 위치하며 곡식의 신을 모신 곳이 직단입니다. 사단의 단은 3단의 석축으로 되어 있고 단안에는 5색의 흙으로 쌓았고 그 위에는 황토로 덮여져 있습니다. 토의 상징인 사단(社壇) 위를 덮고 있는 흙은 일반적인 흙으로 덮여 있지만, 그 안에는 오방색에 따라서 청토(동), 백토(서), 적토(남), 현토(북) 그리고 황제를 상징하는 황토(중앙)로 다섯 구역을 나눠 채워져 있습니다. [사진파일] 이에 반해 곡식의 상징인 직단에서는 겉과 속이 똑같이 일반적인 흙으로 채워지고 덮여 있는 점이 사단과 다른 점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사단의 사방에는 3단의 계단이 4개가 있다. 직단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사단과 직단이 또 다른 것은 제단 위에 올리는 신좌, 즉 제사 때 올리는 신주가 다른데요.. 사단에는 정위(제사의 주 대상)인 국사신의 신좌와 제사의 주 대상에 부속되어 함께 제사를 지내는 배위신인 후토씨의 신좌가 있고 직단은 정위신은 국직신, 배위신은 후직신 이라는 점이 다르다. 여기서 후토신과 후직신은 중국 상고시대 전설에 등장하는 이들로 토지와 농정을 주관했기 때문에 후대에 사단과 직단의 제사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직의 제사는 한양 뿐 만 아니라 각 지방 군현에도 사직단이 있었는데 사단과 직단이 하나의 단으로 되어 있고 이 단에는 후토신 후직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 다른점 입니다. [사진파일] 그리고 직단에는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사단위에 보이는 석주(石主)이다. 신주라고도 불리며 땅에 묻어 남쪽 계단위에 닿도록 하였다. * 행례(行禮) ① 제사는 당일 축시(丑時) 1각(오전 1시 15분)에 실시 제사 당일의 준비는 축전오각(丑前五刻: 축시 5각 전. 11시 45분)부터 시행 - 축판, 폐백, 제기, 제수 등을 사직단에 배치 - 신실에 봉안되어 있던 국사신·국직신·후토신·후직신의 위판을 신좌에 설치 - 취위 ② 절차 : 예모혈(瘞毛血) → 영신(迎神) → 전폐(奠幣) → 진찬(進饌) → 작헌(酌獻: 3회) → 음복(飮福) → 철변두(徹籩豆) → 송신(送神) → 망예(望瘞) >>>>>>>>>>>>>>>>>>>>>>>>>>>> 신실 앞으로 이동 이곳은 신실입니다. 사직신의 네 위판- 국사신, 국직신, 후토씨, 후직씨의 위판을 모셔두는 곳 입니다. 이 사직의 위판은 밤나무로 만들고 빨간바탕에 파란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바탕은 희게 하고 검은 글씨로 쓰고나서 광칠을 거듭 칠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사진파일] 평소에는 이곳에 봉안되어 있다가 사직제사를 거행할 때 제단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단유도설에는 신실에서 유의 남문을 잇는 동선이 그려져 있음. 이를 보아 위판을 옮길 때 유의 남문을